2012년 4월 24일 화요일

" 보길도 " 완도군 전라남도


< 곡수당 > 낙서재 건너편 개울가에 지은 곡수당 지역은 초당 석가단
평대 연지 다리 화계 월하탄이 고산이 휴식 했던 장소입니다.곡수당 옆에는
서재가 건립되어 고산의 아들들과 제자들이 살던 곳입니다. 모두 소실되고
없어져서 터만 남아 있던것을 복원 공사 중인데 5월이면 마무리 공사가 끝난
다고 합니다.
보길도에는 온통 동백꽃 일색입니다.
< 세연정 > 국립 공원 관리공단이 선정한 100선에 선정된 세연정은
3000여평의 계원으로 부용동(지역 이름 ) 입구에 있습니다. 세연정을 중심
으로 좌우에 연못(205평)과 계담(600평) 판석재방 동대 서대 옥소대 칠암
비홍교 동백나무 대나무 소나무 숲이 우거져서 아름답습니다. 윤선도 선생
님은 이 곳에서 음악을 연주케 하고 기녀들로 하여금 동대 서대에서 춤을 추게
하거나 동자가 배를 타고 ' 어부사시사 ' 를 노래 부르게 하기도 하고 낚시도
즐기던 곳입니다.계곡의 물을 가둬서 연못을 만들었고 물이 계속 흘러 가게
되어 있어서 물도 맑고 깨끗했습니다. 부용동 유적은 고산의 기발한 착상과
절묘한 자연과의 조화성으로 구성된 한국 최고 최대의 별서 조경 유적입니다.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문신으로 효종의 스승이었던 윤 선도는
(1587-1671) 서울 출생으로 8세 때 큰 집에 양자로 가게 되어 해남 윤씨
집안 대종을 잇게 됩니다. 30세 때 이 이첨 일파에 대한 탄핵으로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이 때 부터 유배와 은둔으로 이어지는 일생을
보내게 됩니다. 51세 되던 해 왕(인조)이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세상을 등지고자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의 수려한 풍광에
매료 되어 보길도에 정착하였다고 합니다. 강진과 해남에는 윤선도 후손인
' 해남 윤씨 ' 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아래의 연못들은 세연정을 둘러 싸고
있는 연못들입니다.

< 낙서재 > 고산 윤선도가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 하던 곳으로
무민당 등 모두 소실되고 집터만 남아 있었던 것을 건물 4채를 현재
복원 하고 있는 중인데 5월이면 마무리 공사가 끝난다고 합니다.

<동천석실> 낙서재 건너편 비위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 칸짜리 목조 건물인 이 곳에서 고산 윤선도가 책 읽고 사색을
즐겼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것을 zoom 으로
당겨서 찍었습니다. 참고로 고산은 매우 부자였다고 합니다.

' 보길도' 는 면적이 32.98제곱킬로미터이며 완도군의 11.7% 이며
인구는 3200명에 1100가구 입니다. 해남 땅끝 마을에서 훼리를 타고
약 45분간 항해 하면 노화도 산양항에 도착하는데 다시 버스를 타고 보길대교
를 건너면 '보길도' 입니다. 마늘 밭이 많고 동백꽃이 군집을 이루고 있
으며 부용동에 윤선도의 발자취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예송리 해수욕장>활모양 처럼 생긴 해수욕장이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갈들이 너무 많았으며 사진에는 볼 수 없지만 멀리에는 전복 양식장이
군집을 이루고있었읍니다. 위의 작은 배들은 양식 전복장에서 전복에게
먹이를주는 배들이라고 합니다. 전복의 먹이는 미역과 다시마래요.
강아지가 예뻐죠!! 낙서재로 가는 도중의 민가에서 기르는 귀여운
강아지!! 갖고 싶었습니다.

댓글 없음: